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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주도 캠핑 여행을 떠날 때는 우도에 들어갈 계획조차 없었기 때문에 장비는 무척 조촐하게 준비했다.
(그래도 모기장 텐트며, 이불이며, 에어매트며, 릴선이며, 전기 전등이며 필요한 건 다 챙기긴 했지만;;)
그래서 우도에서 캠핑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밤에 어떻게 버틸까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를 끌어올 곳이 없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전등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도의 비양도가 오지와 같은 곳이기 때문에 가로등 또한 전무했고, 전기를 못 쓰기 때문에 가져간 노트북도 1시간 정도가 리미트였다.
때문에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고 최대한 밖에서 많이 굴린 것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비양도에 친 텐트로 돌아왔는데 예상대로 주변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그나마 다른 텐트에는 다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 불빛과 달빛에 의지해 우리 텐트는 쉽게 찾아가긴 했다.
저녁을 안 먹었지만 점심 자체를 늦게 먹어서 간단하게 방울토마토로 때우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도봉을 올라가고, 돌칸이도 다녀오고,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 열심히 놀아서인지 굶은 애들마냥 허겁지겁 먹어댔다.
결국 양이 부족해서 사과까지 다 먹고 나서야 아이들의 배가 진정되었다.
이후 할 게 없으니 아내는 휴대폰을 들고, 나는 컴퓨터를 했는데 아이들은 딱히 재밌는 게 보이질 않자 하나 둘 잠자기 시작했다.
아내도 피곤했는지 일찍 잠을 청했고, 나도 노트북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1시간 정도만 버티고 일찍 잤다.
여기까지 보면 아주 편안한 비양도 캠핑 여행으로 보이겠지만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사건번호 1. 둘째 아들의 테러
잠을 자다가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 ㅁㅁ이가 쉬야 했어."
잠결에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그저 꿈이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아내가 일어나서 이불 걷고 아들 바지를 벗기고 하는 걸 보니 꿈이 아닌 모양이다...
입었던 바지를 다시 챙겨주는 것으로 아들은 해결되었지만 문제는 이불과 에어매트.
이미 안쪽 깊숙히 젖어 있는 상태라 어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저귀를 입고 있었던 녀석이었지만 오늘은 아들이 기저귀에 쉬를 했다고 입히지 않았다고 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갔던 가족에게 기저귀 하나라도 얻어서 입히는 거였는데...!
평소 자다가 쉬를 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하필이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몸도 피곤하고, 텐트 안에서 잘 때 일을 터뜨리는 것인지 참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으니 이걸 들어다 철썩철썩 파도치는 바다로 던질 수도 없고.
어쨌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니 집에 가서 빠는 것으로 마음을 잡고 대충 안 젖은 부분을 포개 두었다.
다만 아들 옆에서 잤던 아내는 난데 없는 테러를 당해서 쉬야 때문에 잘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사건번호 2. 텐트 다리 살려
우도의 비양도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닷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어온다.
블로그 후기에서 대충 보기는 했는데 설마 이렇게 심하게 불 줄이야.
그래도 낮 동안 설치해 둔 텐트가 밤에 돌아갔을 때까지도 멀쩡히 버티고 있어서 하룻밤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만이었다는 듯 새벽에 자다가 갑자기 텐트 다리 하나가 푹 꺾이는 것이 아닌가.
원래 원터치 접이식 텐트라서 약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버티는 힘이 많이 약한 모양이다.
아내가 텐트 안에서 지퍼만 열고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는 했는데 얼마 뒤인지, 한참 뒤인지 또 다시 텐트 다리가 꺾여버렸다;;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자체가 그리 힘든 건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꺾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은 싹 달아나버렸다.
비양도에서 텐트 치고 잘 때 요렇게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 했다.
게다가 바람은 어찌나 세게 부는지 마치 태풍이 지나가는 것 같았고, 파도소리 역시 하염없이 콰콰콰콰콰~ 하고 들려와서 혹시 쓰나미가 밀려오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까지 들었다.
아마 바닷가에서 자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바닷가에서 잠을 자면 파도가 철썩~ 철썩~ 치면서 참 낭만적이고 좋을 거라고.
하지만 낭만은 개뿔.
현실에선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게 아니고 콰콰콰콰콰콰콰~하고 끊김없이 들려온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백사장 같은 해변이 아니라 들쑥날쑥한 갯바위라서 파도가 치는 타이밍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파도 소리가 계속 들려왔던게 아닌가 싶다.
어찌 되었거나 이렇게 고생하면서 비양도에서 텐트 치고 잔 게 아까워서라도 우도 비양도에서의 일출은 꼭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잠은 설 잠을 잤기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는 건 문제가 없어서 일출 시간이 되었을 때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일출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좁은 돌담 위로도 세 명이 대포 같은 사진기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으니 이곳이 일출 명소긴 한가 보다.
아내도 내 뒤를 따라서 나왔다.
그러나 바닷가 위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데다 바닷 바람이 너무 강해서 잠시 같이 구경하다가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전혀 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지나자 빨갛게 익은 태양이 시선에 잡혔다.
그래서 나 또한 사진기를 들고 이리 가서 찍고, 저리 가서 찍고, 줌으로 땡겨서 찍고, 넓게 광각으로도 찍고, 하늘도 찍고, 바다도 같이 찍는 등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 댔다.
대충 일출 사진을 다 찍은 뒤에는 짐 정리를 시작했다.
아들이 밤 사이 사고쳤던 이불과 바지를 밖에 말리고, 아침은 이번에도 간단하게 장조림으로 뚝딱~
비염 때문에 밖에서 안 사먹고 비양도에서 발아현미 햇반만 먹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냥 장을 본 7만원으로 차라리 맛집이나 갈 걸 하는 생각이 든다ㅎㅎ
원래 계획은 우도에서 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밤새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고 그냥 일찍 배타고 나가는 것으로 여행 코스를 변경했다.
그래도 그냥 나가는 것은 아쉬운지라 어제 보지 못 했던 검멀레 해변이나 우도 등대, 하수고동 해수욕장 등을 코스 상에 추가했다.
우도 비양도는 백패킹이라면 모를까 어린 애들 데리고 올만한 곳은 아닌 듯 싶다.
주변에 놀 것도 없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바람 소리, 파도 소리에 시끄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기들은 세상 모르고 잘 자긴 했지만. 참, 강하게 키웠다ㅋㅋ)
그나마 건진 거라면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는 것?
아마 우도가 너무 복잡해서 다시 오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비양도에서 하루 캠핑하는 건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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